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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소식] “표준 만드는 나라가 규칙 정한다···한국, 인실리코 잡아야”
2026-08-21 조회수 : 51

서영철 KOAIM 본부장은 성남·판교 ‘피지컬 AI 기반 의료로봇 기술통합센터’ 구축을 총괄하고 있다. [사진=이종영 기자]
 

다리 근력이 약한 노약자나 환자가 몸에 착용하면 힘을 보조받아 더 쉽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이런 웨어러블 로봇을 ‘외골격(外骨格) 보행보조 로봇’이라 부른다. 최근 초경량 웨어러블 형태로 상용화가 시작된 이 로봇이 이번 사업의 주인공이다. 목표는 이 로봇을 ‘인실리코(in-silico·컴퓨터 시뮬레이션)’ 방법론으로 먼저 검증해 안전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방식은 이렇다. 컴퓨터 속에 한국인의 다양한 걸음걸이를 대표하는 ‘가상의 사람’을 만든다. 이 가상의 사람에게 외골격 보행보조 로봇을 ‘가상으로 입혀’ 본다. 로봇이 사람을 얼마나 잘 돕는지, 관절에 무리는 가지 않는지, 넘어질 위험은 없는지를 컴퓨터가 먼저 계산한다. 실제 환자에게 시험하기 전 단계다. 이 예측이 맞는지는 실제 로봇 착용 데이터로 다시 검증한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한국AI의료헬스케어연구원(KOAIM)에서 만난 서영철 본부장이 밝힌 ‘피지컬 AI 의료로봇’ 사업의 밑그림이다. 서 본부장은 성남·판교 거점의 ‘피지컬 AI 기반 의료로봇 기술통합센터’ 구축을 총괄하고 있다.

 

사람 대신 컴퓨터에 먼저 입힌다

서 본부장이 말하는 피지컬 AI 의료로봇은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른 체형·근력·질환 상태와, 그때그때 달라지는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수많은 경우의 수를 실제 환자에게 일일이 실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외골격은 몸에 직접 힘을 주는 ‘접촉형’ 로봇이다. 잘못 작동하면 곧바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사람에게 직접 입혀 시험하기가 어렵고 위험하다. 자동차가 실제 사고 없이 컴퓨터로 충돌을 미리 검증하듯, 의료로봇도 가상 환경에서 먼저 위험을 걸러내자는 것이 ‘인실리코(in-silico·컴퓨터 시뮬레이션)’ 방법론이다. 서 본부장은 “인실리코는 실제 시험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라며 “그 앞에서 ‘이 로봇이 안전한가’를 먼저 걸러주는 필터”라고 강조했다.

 

세 조각이 맞물려야 완성된다

이번 사업이 겨냥하는 것은 다리 전체(골반·엉덩이관절·무릎·발목)를 돕는 외골격 보행보조 로봇이다. 만들려는 것은 세 가지가 맞물린 하나의 플랫폼이다. 첫째, 실제 걸음 데이터로 빚어낸 ‘가상 사용자’ 집단이다. 둘째, 그 가상 사용자에게 외골격을 입혀 사람과 로봇이 함께 움직일 때의 힘을 계산하는 엔진이다. 셋째, 그 계산 결과를 실제 착용 데이터와 맞춰 보정하는 검증 장치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가상 사용자에게 특정 회사의 외골격 설계도를 입힌다. 그런 뒤 골반·허벅지·정강이 등 로봇이 몸에 닿는 여러 지점에서 오가는 힘과 관절에 걸리는 부담을 계산한다. 로봇이 ‘너무 많이 도와줘’ 오히려 근육을 약하게 만드는 위험, 이른바 ‘과보조’ 위험까지 함께 짚는다. 서 본부장은 “옷을 짓기 전에 마네킹에 미리 입혀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완성된 로봇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만들기 전에 위험을 걸러내는 사전 점검 도구”라는 설명이다.

 

한 번 만들어 여러 회사가 나눠 쓰는 공용 인프라

이 플랫폼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어떤 로봇을 평가하든 다시 쓸 수 있는 ‘가상 사용자 공장’이다. 다른 하나는 여기에 특정 회사의 외골격을 얹어 결과를 뽑아 검증하는 ‘적용 엔진’이다. 가상 사용자를 정해진 규격(키·몸무게·근력·걸음 특성 등)으로 넘겨주기 때문에, 새 로봇이 와도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여러 기업이 함께 쓰는 공용 인프라’라는 구상의 근거다. 서 본부장은 “로봇이 다 비슷해서가 아니라, 평가하는 방식이 공통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가 달라도 자동차 충돌시험은 같은 방식으로 안전성을 매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사업은 성격이 전혀 다른 다섯 기관이 손잡은 국책사업이다. 원천기술은 분당서울대병원, 실제 병원 적용은 분당차병원이 맡는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건양대 산학협력단, 시험·인증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기업 지원은 성남산업진흥원이 담당한다. 2026년 6월부터 2030년 12월까지 KOAIM이 총괄한다. 서 본부장은 문화도 일하는 방식도 제각각인 이 다섯 기관을 하나로 잇는 “접착제이자 신경계”가 인실리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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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골격계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오픈심(OpenSim)’으로 인체 골격·관절 모델을 제작하는 화면. 인실리코 검증은 이런 방식으로 가상 인체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이미지=OpenSim Creator]

 


존재하지 않는 사람, 어떻게 믿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데이터로 만든다는 점이 낯설다. 서 본부장은 “무에서 창조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가상 사용자는 상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한국인의 임상 데이터에서 출발해 통계적으로 확장한 ‘디지털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상·병적 보행을 담은 500명 이상의 실측 데이터와 대규모 재활 운동 데이터가 바탕이다. 이를 토대로 근감소·뇌졸중 편마비 등 병든 걸음까지 다양성을 재현한다.

신뢰의 열쇠로 그가 꼽은 것은 ‘정답지’의 존재다. 이번 사업이 다루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기종의 외골격을 실제 착용해 얻은 데이터를 이미 확보해 두었다는 것이다. 발이 땅을 디딜 때의 힘을 재는 장치(지면반력 측정판)로 얻은 값까지 포함해서다. 컴퓨터의 예측을 곧바로 맞춰 볼 실제 정답이 있는 셈이다. 서 본부장은 “가상 사용자의 신뢰성은 생성 알고리즘의 정교함이 아니라, 실측과 계속 비교·보정하는 ‘닫힌 고리’를 얼마나 꾸준히 돌리느냐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아직 넘지 못한 두 개의 벽

서 본부장은 한계도 감추지 않았다. 관절이 꺾이고 로봇이 움직이는 동작 자체는 정밀하게 재현한다. 다만 피부와 살이 눌려 밀리는 변형, 고정 끈(스트랩)이 눌리고 미끄러지며 생기는 압력까지는 아직 완벽히 구현하지 못한다. 그는 “이건 이 분야 전체가 아직 넘지 못한 벽”이라고 했다. 로봇이 몸에 닿는 지점이 늘어날수록 계산량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더 현실적인 난관은 데이터의 ‘자격’이다. 확보한 데이터 상당수는 원래 AI 학습용으로 공개된 것이다. 정밀한 물리 계산에 필요한 정확도를 갖췄는지 하나하나 따져 봐야 한다. 서 본부장은 이 ‘데이터 적합성 실사’를 사업 첫해의 최우선 과제이자 최대 위험으로 꼽았다.

두 문제 모두 해법은 마련해뒀다. 계산량은 고성능 컴퓨터로 나눠 처리하고,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근사하는 AI(대리모델)를 함께 써 속도를 끌어올린다. 검증 범위도 한꺼번에 넓히지 않는다. 로봇이 닿는 관절 중 엉덩이·무릎을 먼저 검증한 뒤 발목까지 순차적으로 넓힐 계획이다.

 

‘믿을 만하다’는 어떻게 증명하나

결국 규제기관이 인정하려면 ‘정교함’이 아니라 ‘신뢰성’을 증명해야 한다. 서 본부장은 “정교함과 신뢰성은 다른 문제”라며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것은 후자”라고 했다. 국제 표준에 맞춰 검증을 설계한 이유다. 기준은 의료기기용 컴퓨터 모델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국제 표준(ASME V&V 40)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2023년 지침이다. 예측한 관절 각도와 실제 측정값의 오차, 힘의 일치 정도 같은 지표를 규제기관과 미리 합의한다. 그 통과 여부로 신뢰성을 입증하겠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두 가지다. 검증 데이터를 식약처 안전성 평가·인허가 참고 근거로 제출하는 것, 제조사에는 설계 단계 적합성·안전성 확인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 다만 서 본부장은 선을 분명히 그었다. “‘임상시험을 대체한다’는 표현은 과장”이라며 “임상을 준비하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여준다는 것이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범위”라고 했다. “이 경계를 흐리는 순간 규제기관과 의료 현장의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다.

 

“표준 만드는 나라가 규칙 정한다”

서 본부장은 성공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 “기술이 논문으로 남았는가가 아니라, 기업이 돈을 내고서라도 쓰고 싶어하는 인프라가 되었는가”라는 것이다. 지금은 걷기에서 출발하지만, 기술이 무르익으면 수술·재활·돌봄 전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기술이 아니라 표준”을 꼽았다. 해외에서 이미 자리 잡은 평가 틀을 뒤늦게 따라가기만 해서는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 협의체(IMDRF·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포럼, 한국 식약처도 참여)를 언급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검증 방법과 데이터 표준을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표준을 만드는 나라가 결국 시장의 규칙을 정한다.”

 

한눈에 보는 용어


▶인실리코(In-Silico) : 실제 실험 대신 컴퓨터로 먼저 검증하는 방법. ‘컴퓨터 안에서’라는 뜻이다.

▶피지컬 AI : 센서로 현실을 인식하고 몸을 움직여 작동하는 AI. 대화만 하는 AI와는 다르다.

▶외골격 : 몸에 덧입어 근력을 보조하는 로봇. 여기선 걷기를 돕는 ‘로봇 다리’를 뜻한다.

▶가상 사용자 : 실제 환자 데이터로 만든 가상의 인간 집단. 다양한 체형과 걸음걸이를 대표한다.

▶과보조 : 로봇이 너무 많이 도와줘 오히려 근력을 약하게 만드는 부작용.

▶Sim2Real : 시뮬레이션 예측을 실제 측정값과 맞춰보며 검증하는 과정.

▶TRL(기술성숙도) : 기술이 아이디어 단계(1)부터 상용화 단계(9)까지 어디쯤 와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

▶대리모델 : 오래 걸리는 계산을 빠르게 대신 근사해주는 AI.

▶ASME V&V 40 / FDA 지침 : 의료기기용 컴퓨터 모델이 믿을 만한지 평가하는 국제 기준.

▶IMDRF : 각국 의료기기 규제기관이 함께 규제 방향을 논의하는 국제 협의체.



출처 : 더메디컬(https://www.themedic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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